Artist Statement 작가노트


2023

영문으로 적힌 내 이름이 제대로 읽히지 않는 지역에서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나를 여성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섬세한 재료를 꼼꼼하게 쌓아올려 만든 구(球)나 펜드로잉을 보면 나 역시도 스스로의 집요함이 낯설게 느껴지는데, 그렇게 만든 것들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한데 엉기게끔 사력을 다해 붙잡는 것 같다. 초기의 추상 디지털 풍경화도 밤-낮, 계절, 그리고 거리감이 변화하는 과정을 느리고 자잘히 이어가도록 했고, 디지털 작업이 물질감을 기반으로하는 입체로 넘어가며 '미국'이라는 지역이내게 보여주던 시기적, 또는 개인적으로 상충되는 감상을 속이 비치며 일렁이는 레이어를 쌓으며 표현했다.

피부에 와닿는 최근의 변화는 나의 역할이 사회적 활동으로부터 서서히 가정 내의 살림을 돌보는 것으로 바뀌는 점이다. 그런 과정이 이전에 쉽게 공감할 수 없던 '아내', '주부', '할머니'와 같은 사람들에 감정이입하게끔 했는데, 이들이 보이는 상실감이나 유쾌함, 그리고 활짝 열린 유대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린다. 그리고 무의식적인 연계가 발생했는지 모르나, 내게 익숙해지는 작업 방식 (꿰메기, 붙이기, 엮기, 미세하게 잇기 등)과 제작을 시작하는 동기(아내가 엄마가 되는 모습, 아줌마들이 정보를 나누고 흡수하는 과정 등)가 초반에는 가늘게 이어져있다가 시간이 흐를 수록 한 점으로 모여드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빈틈없이 만드는 것들은 애매하게 완성된다. 그건 아마 작업 초기의 기획이 구체화되면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고, 만들고 싶었던 바도 '그게 그랬었나?' 싶게 모르던 면이 불쑥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확고했던 목표에 회의감이 생기며 되도록 나은 방향으로 걸음을 살짝 비트는데, 이런 태도가 묘한지점에서 생각, 만들려던 것 그리고 그것의 바뀜, 제작의 중간과정 등의경계를 흐리며 작업을 끝낸다. 한때는 (지금도 그렇지만) 하려던게 불확실해지고 만들다보면 결과가 엉뚱해져서 화가 치밀었다. 요새는 되도록 그러려니 한다.


2022

드로잉 단상 (Into Drawing at SOMA)

나는 아내에게 문득 떠오르는 농담이나 장난을 작은 종이에 대충 그리며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나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을 봐왔음에도 곁을 지켜주는 아내이기에 내가 전하는 말들은 날것 그대로이다. 맥락에 맞지 않는 이야기, 오해를 살만한 자극적인 내용들, 또는 기술적으로 실현되기 불가능한 것들까지 마구잡이로 쏟아내곤 한다.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가끔 상처가 되곤 했던 그녀의 냉정함이 이 상황에서는 가장 필요한 객관적인 반응으로 다가온다. 내게 가장 뿌듯함을 주는 반응은 나의 시시한 농담에 폭소하듯 아내가 숨을 멎고 웃는 것이다. 나는 그녀와 아무런 부담 없이 나누는 대화와 책상에 굴러다니는 필기구로 대충 그린 그림의 가벼움을 사랑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긴 수업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교과서의 빈 공간에 낙서를 끄적이며 느낀 행복감이 미술학원의 시계 초침 소리와 반복되는 붓질에 저만치 사라지듯이, 아내와의 실랑이 끝에 결정한 스케치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손끝이 떨려온다. 그 유쾌하던 대화와 공기처럼 가볍던 드로잉은 조금씩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마치 해맑던 아이가 고생을 거치며 철이들 듯- 아주 단단해진다. 한때는 머릿속 구상을 똑같이 눈앞에 만들어내지 못함에 분노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러려니'하는 단계를 지나 '예상했던 것보다 괴상한 게 나왔다'는 생각에 웃음을 지을 정도로 소소한 경험들이 쌓여가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그 자유분방한 낙서도 드로잉이고, 내가 최선을 다해 만들어 낸 것들도 '드로잉'이라는 타이틀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조각이나 회화와 같이 흔히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전공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다.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던 시기에 이 불안을 난해한 텍스트와 나와 친하지는 않지만 '회화적인' 재료와 기법들로 감추려 했었다. 그리고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내가 써 내려간 텍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고, 작업하는 과정 역시 막연해져만 갔다. 2016년, 연고가 없는 미국 동부 밤거리를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걸은 일이 있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무엇인지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웠고, 내가 선택한 매체에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에 낙담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내가 청소년기부터 즐겨 쓰던 펜촉을 사용해 가는 선을 켜켜이 쌓아올린 드로잉을 그려보았다. 이와 동시에 우연히 작업실 서랍 구석에서 꺼낸 실로 연약한 입체물을 만들었고 이 실험들을 통해 작업을 확장하려 몸부림쳤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는 설명하기 쑥스러운 유년기의 이야기에서 찾아나갔다. 그것은 나를 길러준 이모, 그리고 이모가 훌쩍 떠나간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것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그녀의 진짜 비밀> 연작을 시작했다.

<뜨개질 드로잉>, <공중 드로잉>, 그리고 <그녀의 진짜 비밀>로 이어지는 작업들은 아내를 산파로 두고 아이를 낳듯이 고독하고 고통스럽게 고안해냈다. 당시 내가 가장 신경 쓰던 부분은 '만질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과 '지극히 소소한 나의 이야기를 우리가 살아가는 동시대에 연결하는 것'이었다. 먼저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공중에 매단 나일론 와이어로 기하학적인 구조를 만들고 실을 이용하여 이들이 엉키지 않도록 간격을 유지하게 했다. 이에 더불어 최종 완성품이 미풍에도 움직일 수 있는, 그럼에도 그 형태가 최대한 손상되지 않는 방식을 실험해 나갔다. <그녀의 진짜 비밀>의 제작 배경이 미국이라는 사회가 보였던 명과 암을 동시에 묶어내는 시도였듯이, 대부분의 나의 작업을 장소 또는 풍경이 지닌 복합적인 이미지들을 단순화된 형태와 연관성 있는 세부 묘사들로 조합하는 실험으로 이어갔다. 2020년 9월, 나는 가족과 함께 고향인 서울로 돌아왔고 자연스레 <그녀의 진짜 비밀>과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마무리하며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나는 <그녀의 진짜 비밀>보다 나 자신에게 더욱 긴밀한 이야기인 '엄마가 된 아내, 나를 보살펴준 아주머니들, 그리고 우리 엄마'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기존의 작업방식을 발전시키며 이번 전시 <할머니는 아빠의 엄마>를 준비하게 되었다.

내가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 벌써 3년이 흘렀다. 나의 부모님은 어떻게 이 길을 지나온 건지 의아할 정도로 정체모를 두려움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주 진부한 말이지만, 오늘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마뜩한 돌파구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동경하는 어마어마한 이력, 조형적으로 그리고 내용적으로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작업을 성취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독이는 것은 어머니와 아내의 격려와 같은 작은 낙서이며 이로부터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용기를 내어 그들의 크기를 키우고 섬세하게 마감해 나간다. 이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언젠가 생각지도 못한 괴상한 작업이 지금은 감히 엄두도내지 못할 장소로 나를 데려갈 것만 같아 괜스레 설렌다.